우리 집 뒤 작은 고찰, 견성암 낙엽을 정성드려 쓸고 계시는 스님 모습이 가을처럼 처연하다.   요즘 매일 만난다.
"스님! 항상 낙엽을 쓸고 계신데 고생이 많습니다. 매일 매일"
그렇게 말하면서 산길을 내려온다.
농담을 하고 싶었다.
 "계절이 없으면 좋겠지요? 겨울이 없다면 낙엽도 없겠지요? 스님 常夏의 나라에는 낙엽이 없을 터이니요."
불각시 아니다 그건아니다
생각을 고쳐먹었다.
흐름이 없는 시간 그 속의 공간에 변화가 없으니 그래서 모든 게 정지되어 있으니 어찌 산에 나있는 나무에게만 시간의 흐름을 정지하고 그걸 바라보는 인간들에게만 시간의 흐름을 명 할 수있단 말인가?  만약 모든 것을 주관하는 전지 전능 절대자가 존재한다면.
하기야 우주의 운행이 신의 의도일지도 모른다만.
산천초목에 변화가 없는 영원한 푸르름...생성 소멸이라는 흐름이 없는 공간!  변화없음--그것은 삼라만상  그 변화 운행에 죄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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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의 변화을 거스르려하는 면에서 여인네들의 美 추구만큼 더 집요 게 있을까?
 여인네들은  젊음을 常夏로 가지겠다고 고집하니,..시간의 흐름으로 두껍게 축적되는 피하지방, 아래로 아래로 쳐져 下向化하는 두꺼운 각질성 피부를 멈춰 보겠다고 안간힘,  거칠고 메마른 피부를 독뱀으로 손가락 물려 삶을 마감한 시저의 불후의 연인 크레오파트라 피부로 재생하고자 하는 욕심을 극한 여인네들에게서 나는 변화에 거스리려는 무모함 그 어리석음을 엿볼 수있다.
이런 인공은 자연을 순간이나마 극할 수있겠지만 금방 무모한 걸로 판명된다.
도심지 성형외과는 젊음을 회복하고 극대화하려는 여인네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니...인공이 판을 치니 자연은 구석지에서 훌쩍거리고 있는 상황이다.
나는 아내가 필요 이상으로 거울 앞에 오래 앉아있으면 우스운 생각이 든다.
아내가 변하지 않고 있으면 변하는 나는 왼쪽 발에 흑색 socks를 오른쪽 발에는 백색 stockings를 신고 있는 부조화이면서 희극이다.
대체로 인간의 비극은 변화를 거스릴려 하는데서 생기니 오랜 과거를 볼 필요 없으니 이집트 무바락  리비아 카다피, 시간의 흐름 역사의 변화 진보를 무시하려고 한 데에서 비극은 생기고...멀리 볼 필요가 어디 있으랴?  여기 우리에게도 박 某 대통령의 궁정동 비운도 그러하고..
나야 이런 면에서 변치 않는다 하여도 해외 도피도 재산도피도 국제재판소 법정도 무관하니...

그러나 내게 꼭  변해보고 싶은 게 있다.
 나이와 그에 수반되는 육신의 변모 변화가 그거다
우선 생물학적인 나이를 減하자 거기에서 육신의 변화도 따라올 것이고...
대략  5살정도만 감하면 문제가 크지 않으리라....(

여인네들의 젊음을 유지하고자 하는 욕심을 한참 비난하던 내가 내 논리 함정에 빠졌나?